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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10 12:01
이청준소설 「낮은데로…」 주인공/안요한목사(요즘 어떻습니까)
 글쓴이 : 새빛지기
조회 : 20,219  
이청준소설 「낮은데로…」 주인공/안요한목사(요즘 어떻습니까) 
[국민일보]|1993-09-25|14면 |기획,연재 |2585자

◎맹인대부 15년… “심안의 목자”/37세때 실명… 벼랑끝 “제2의 삶”/낮은곳 부축 「눈물간증」 5천회/새빛재활원·점자잡지·불우청소년 야학 등 「땅끝선교」이청준씨의 실화소설 「낮은데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55·새빛맹인교회).미국유학을 앞둔 37세에 중도실명,모진 고난과 질곡의 삶을 헤쳐온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까지 됐을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실명에 재산을 탕진하고 아내와 자식들과도 헤어져야 했던 그가 자살 직전의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제2의 삶」을 시작한지 올해로 15년.그동안 그가 일궈낸 봉사와 선교의 열매는 가히 「맹인들의 대부」로 불릴만큼 풍성하다.

새빛맹인재활원과 자활학교,탁아원 운영,월간 점자신앙잡지 「새빛」발간,새빛맹인노래선교단과 맹인핸드벨콰이어 운영,맹인교회와 선교회를 통한 선교활동,점자도서실설립….

이런 다양한 활동뿐 아니라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간증집회 및 강연에 나서고 있는 안목사를 서울 방배동 새빛맹인선교회관 2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달에 30∼50회 정도 집회에 나갑니다.간증집회가 가장 많고 기업체 강연이나 사회단체 특강도 꽤 됩니다,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었던 제가 이제 타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복음을 전하는 위치가 되었다는 사실이 언제나 감격으로 다가오기에 초청해주는 곳은 가리지 않고 어디라고 달려갑니다』
안목사가 15년동안 집회를 인도한 횟수는 무려 4천8백여회.1년중 3∼4개월은 외국에 다니며 간증을 하고 있다.안목사의 스토리가 영문 책자로도 발간될 만큼 외국인들의 관심과 초청도 활발한 것.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몇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맹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눈이 맑고 깨끗합니다.그 이유라도 있습니까.

▲사실 제 눈을 본 외국의 저명한 안과의사들이 시력을 찾을 수 있는 눈이라며 정밀검사와 수술을 여러차례 권유했습니다.저 역시 맑은 하늘과 사람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습니다.그러나 항상 낮은 곳에 거할 것을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저의 개안은 유혹이며 맹인선교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거절했습니다.만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지금이라도 빛을 주실 것입니다.

­새빛맹인회관을 건립하느라 빚이 있다고 들었고 시설유지와 운영에도 많은 돈이 필요할텐데요.

▲80년에 미아리에서 1천5백만원 전세로 시작한 저희 교회는 숱한 어려움을 겪다가 한 장애인부모의 도움으로 현재의 방배동 건물을 매입했습니다.그런데 건물이 너무 낡고 공간이 많이 필요해 믿음으로 5층 건물을 신축했습니다.모두 2억5천만원의 공사비가 들었는데 3년여동안 이 빚을 거의 갚고 지금은 5천만원정도 남았습니다.그리고 여러 자활단체를 운영하다 보니 매달 3천만∼4천만원의 운영비가 소요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주위의 모르는 손길들을 통해 간신히 채워주십니다.예산없이 매달 꾸려나가는 것을 저희는 「징검다리 축복」이라고 부릅니다.이중 제 간증초청 강사비도 큰 몫이 됩니다.

­똑같은 내용의 간증을 반복하면 타성에 젖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맞습니다.그래서 저는 3개월마다 제 간증을 직접 들으며 절망가운데 영혼의 빛으로 겪아오신 예수님과의 첫감격을 되새깁니다.그래서 영적으로 깎고 다듬는 시간을 가지지요.그러노라면 제가 죄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떠오르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됩니다.그래선지 5천회에 육박하는 간증집회에도 불구하고 늘 눈물을 참지못하고 흘립니다.

­간증집회외의 활동도 활발하신데요.

▲15년동안 불우청소년을 위한 야학을 개설해 8백27명이 졸업했고 79년부터 점자잡지 「새빛」을 인수해 발간하고 있습니다.이 점자신앙잡지를 원하는 맹인은 2천여명인데 예산부족으로 7백50부만 제작하고 있습니다.맹인재활원에서 40명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재활학교엔 32명이 있습니다.신학대학에도 5명이나 보냅니다.탁아원 운영도 활발하고 새빛교회 교우도 80여명이 됩니다.

­사모님을 만난 이야기도 좀 해 주시지요.

▲실명후 아이들과 처가 제 곁을 떠난 뒤 맹인선교회 식구들과 살고있을 때입니다.워커힐호텔에서 범태평양신체장애자대회가 열렸어요.맹인관계자로 참석한 저는 재활의학을 전공한 지금의 처를 그곳에서 만났지요.나이차가 16년인데다 친정이 보수적인 집안이라 처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세상적으로는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결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귀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것이지요.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아들도 낳고 잘 내조해주는 고마운 아내에게 저는 늘 「평생 다른 여자를 쳐다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웃음).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18 년전 남의 집 처마밑을 전전하며 눈물 흘리던 기억을 더듬는다는 안목사는 동료맹인들에게 「우린 겨우 눈만 못본다.우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심어주는데 항상 앞장선다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몫의 고통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그 무거운 짐을 벗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하는 안요한목사.새빛맹인선교회의 버거운 운영과 계속되는 간증집회의 강행군 속에서도 정상인보다 더 밝은 웃음과 넉넉한 여유를 갖는 것은 그의 말대로 「낮아짐의 처세학」 때문일까.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15만 맹인들의 친구로 언제나 낮은곳에 머물겠다는 그의 굳은 다짐이 취재를 마치고 발걸음을 돌리는 기자의 마음속에 내내 긴 여운으로 남았다.<김무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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